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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및 잡담/내 감정과 생각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마법학교 학생」을 통해 본 동일성에 관한 소론

by 스타델라 2023. 4. 12.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마법학교 학생」을 통해 본 동일성에 관한 소론1)

 

칸델라

 

"The ship on which Theseus sailed with the youths and returned in safety, the thirty-oared galley, was preserved by the Athenians down to the time of Demetrius Phalereus.​ They took away the old timbers from time to time, and put new and sound ones in their places, so that the vessel became a standing illustration for the philosophers in the mooted question of growth, some declaring that it remained the same, others that it was not the same vessel."2)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 ~ 125)가 그의 걸출한 저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Parallel Lives)』에서 남긴 이 명제는 오랜 기간 흥미로운 논담(論談)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는 많은 대중매체에서 언급되고 있는 현상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제는 그 이야기가 친숙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이야기가 오랜 기간 언급되었는가? 그에 대하여 필자는 어쩌면 인류의 근원에 존재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오늘날 과학시대에서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오늘날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 문명의 흐름 중 하나인 '인간 복제'에 대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두려움과 인류 문명의 근간에 존재하였던 호기심이 결합되어 등장한 하나의 큰 흐름3)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딱딱한 논의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만화가 한 편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2023년 04월 06일 필명 '반-바지'라는 어느 만화가가 트위터에 게시한 한 편의 만화 「[단편]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학생 (왕립마법사회에 신고하세요)」(이하 '위험한 학생')4)이다. 

 

 

 만화는 테세우스라는 이름의 '학습 불량 학생'이 마법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간 후 교장실에서 '왜 그가 마법 실습시간마다 제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가'에 대하여 교장선생님과 논의한다는 내용의 큰 내용을 그리고 있으나, 테세우스가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테세우스가 논하는 형이상학적 철학 명제가 난해하였으므로 이에 고통스러워 하는 교장선생님의 괴로움을 그려내기에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본문 속에서 언급된 "복제마법을 쓰면 어느 쪽이 진짜 저인지 어떻게 알죠?? 그걸 떠나서, 가짜 저라고 해도 감정도 언어능력도 있는데 일회용으로 만들었다 죽여도 되는 걸까요????" 라는 '학습 불량 학생' 테세우스의 논의는 비록 그 내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앞서 인용한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테세우스가 던진 명제인 "복제마법을 쓰면 어느 쪽이 진짜 저인지 어떻게 알죠?? 그걸 떠나서, 가짜 저라고 해도 감정도 언어능력도 있는데 일회용으로 만들었다 죽여도 되는 걸까요????" 라는 이 논제에 대하여 어떻게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테세우스의 배를 설명하는 3가지 입장인 '내적 지속론(Endurantism, 3차원주의)', '통시적 지속론(Perdurantism, 4차원주의)', 그리고 '외적 지속론(Exdurantism)'의 관점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내적 지속론'은 '대상은 각각 다른 시간들에서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존재하며 지속한다.'고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대상은 시간적 부분들의 합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을 대신하는 대응짝 관계(counterpart relation) R을 성립시키는 각각의 시간적 부분'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외적 지속론'이다. 이 중간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대상은 그 시간적 부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지속'한다는 통시적 지속론5)이다. 그렇기에 이를 근거로 테세우스의 명제를 풀어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내적 지속론: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복제마법의 결과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라는 양자 모두 오직 하나이며 동일한 대상이다. 그렇기에 양자 모두 동일한 시간 속에서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존재한다.
  • 외적 지속론: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복제마법의 결과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라는 양자는 비록 그 감정이나 언어능력 등 모든 조건이 동일하나 이는 하나의 시간적 부분만을 공유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간적 부분들간의 관계가 동일성을 대신하는 대응짝 관계 R을 성립하는 시간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 통시적 지속론: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복제마법의 결과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라는 이 양자는 각각 다른 존재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부분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집합체인 테세우스의 부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관점들 중 어느 쪽이 더 적절하게 설명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한정하여 답을 하자면, 결론부터 말하여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복제마법의 결과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는 모두 각각 다른 존재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부분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집합체인 테세우스의 부분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그의 저서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에서 언급하였듯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그 근거로 자신의 본성에 의존6)하여 사고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이 이야기가 참이라고 한뎌면,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이 지적하였듯 배제와 거부에 의해 자연(이 경우에는 A와 B의 동일성을 입증하는 근거)을 분석하고 충분한 반례를 모은 뒤 확고한 증거를 통하여 결론에 도달7)한다면, 그들은 동일한 존재일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A와 B 모두 자신이 오랜 기간 배운 지식과 경험을 통해 습득한 자신의 믿음(여기서는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이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은 '앎은 인식적 인상 간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라는 스토아학파의 선(先) 개념8)의 관점에서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제논(Zeno of Citium, c. 334 – c. 262 BCE)이 주장하였듯 그가 믿고 있는 것이 참일 수 있다 해도, 오직 참인 것만을 믿어야 한다는 믿음의 규범을 위배한 것9)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복제마법을 사용한 테세우스(A)와 복제마법의 결과 감정도 언어능력도 동일한 테세우스(B)'가 동일한가라는 명제에 대하여 필자 나름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였다. 비록 제한된 지면과 필자의 부족한 역량으로 흥미로운 글은 아닐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였고 그것에 대하여 짧은 지면상에서 짧게나마 논하였다는 점에서 이 소론은 의의를 지닌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반-바지 작가는 '싸이언사이코시스'라는 후속작을 통해서 "마법이 우리의 육신을 일시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바꿀 순 있어도, 너의 자의식 그 자체인 영혼이 그대로 있다면 걱정할 것 없단다." 라는 결론을 내린 뒤 새로운 명제를 제안하였지만 이에 대하여 논의하기에는 어느 수학자의 말처럼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못하니10) 이후의 명제에 대해서는 추후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 길고 재미없는 필자의 짧은 소론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11)

 


1) 본고를 저술하는 필자는 형이상학을 전공한 인물은 아니거니와 더 나아가 서양 철학을 심도 깊게 전공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필자가 언급한 개념 또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개념 혹은 철학적 명제와 다를 수 있음을 필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본 논문(또는 창작글)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철학적 논의를 하기 위하여 저술하는 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필자가 본문에서 언급할 반-바지 작가의 작품 '[단편]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학생 (왕립마법사회에 신고하세요)'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저술하는 하나의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본 논문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행위는 어쩌면 의미가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름을 필자는 미리 밝혀둔다.

2) "Plutarch, The Parallel Lives", Welcome to Bill Thayer's Web Site, 2018년 04월 21일 작성, 2023년 04월 12일 접속, 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Plutarch/Lives/Theseus*.html

3)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시카고 대학의 과학자 레온 카스(Leon R. Kass, 1939~)로, 그는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생식이 인간 사회와 어린이의 정체성에 미칠 해악을 강조하면서 가족이라는 사회공동체적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복제 인간이 어떤 식의 사회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반문하며 유전공학을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가장 큰 '성공의 비극'이라 언급하며 인간 복제에 대하여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였다.(김미혜, 「<네버렛미고>를 통해본 복제 인간 윤리」,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제17권, 제8호, 2017, pp.121-129, p.122.) 이러한 그의 주장은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역시 호기심 이면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그것이 어떠한 흐름에서 비롯되었던 간에- 두려움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생각된다. 

4) "[단편]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학생 (왕립마법사회에 신고하세요)", 반-바지의 트위터, 2023년 04월 06일 작성, 2023년 04월 12일 접속, https://twitter.com/bahnbazi/status/1646039452551385088.

5) 김신웅, 『구체적 특수자의 시간적 동일성에 관한 연구』, 석사, 서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8, p.3-4.

6) 르네 데카르트 지음, 김진욱 옮김, 『방법서설』, 파주, 범우사, 제4판, 제2쇄, 2020, p.64

7) 프랜시스 베이컨 저, 김홍표 역, 『신기관』, 서울, 사단법인 올재, 2020, p.80.

8) 피터 애덤슨 지음, 김은정 옮김, 『헬레니즘 철학』, 서울, 전기가오리, 2021, p.165.

9) 카차 포그트 지음, 김은정 외 5명 옮김, 『고대 회의주의』, 서울, 전기가오리, 2018, p.41.

10) 고계원 외 9명 공저, 『모든 것의 수다』, 서울, 반니, 2019, p.265.

11) 본고는 2023년 04월 12일 필자가 스퀘어(구 하네바 스퀘어)에 올린 '「위험한 사상에 노출된 마법학교 학생」을 통해 본 동일성에 관한 소론'을 그대로 블로그에 옮긴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어떠한 표절이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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