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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및 잡담/잡담

[번역 비하인드] 럭키 라일락 번역은 어떻게 해야 할까...

by 스타델라 2025. 3. 27.

출처: https://umamusume.jp/character/luckylilac

 

2025년 2월 24일,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일본 서버에는 럭키 라일락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실장이 된 건 아니고 서포트 카드와 아몬드 아이의 개인 스토리에 등장하는 정도입니다만 오르페브르의 자마 중 최고의 성적[각주:1]을 냈다는 이유도 있고 해서 실장 이후 주목을 받았다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단아한 칸사이벤이 특징적인 우마무스메(淑やかな関西弁が特徴的なウマ娘)"라는 그녀의 프로필 메시지[각주:2]에서도 나타나듯 그녀는 작중에서 평소에는 교토 사투리인 교코토바(京言葉)를 쓰다가도 흥분하면 칸사이벤을 쓰는 그런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일본 쪽에서도 여러 추측이 있는 것 같지만 JENJON이라는 어느 유저분의 말처럼 "럭키 라일락이 이긴 G1 레이스가 전부 칸사이권 레이스장"이었고, "릿토 트레센 소속의 럭키 라일락을 미호 트레센 소속의 아몬드 아이와 대비시키기 위해"[각주:3] 의도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다만 럭키 라일락(이하 '라라'로 통일함)의 2차 창작물은 아직까지 많이 등장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코토바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마추어 번역가(저를 포함한)와 전문 번역가 모두 다 제각기 다르게 번역하다보니 제가 조금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조금 머릿속으로 정리할 겸, 그리고 번역 노트에서 밝히기에는 그 지면상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런 형태로 글을 써 보고자 합니다.

 

교코토바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앞서 먼저 교토의 인문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교토는 1869년, 메이지 신정부의 수립으로 수도가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지기 전까지 약 1000년 간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에 교토 사람들은 교토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렇기에 그 지방의 말씨를 뜻하는 '弁(벤)'이 교토 사투리를 뜻하는 '교코토바(京言葉)'에 사용되지 않은 데서도 알 수 있듯 교토인에게 교토어는 단순히 사투리를 넘어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토어를 단순히 특정 사투리와 매칭시켜 번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복잡한 이야기를 빼더라도 교코토바 번역이 어려운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번역의 상이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흔히 교토・오사카의 지역 언어를 우리나라에서 번역할 때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교토・오사카이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 지역 출신인 작품 속의 캐릭터, 작품 속의 주요한 캐릭터, 교양있는 토착 캐릭터, 지적이고 교육받은 캐릭터, 지역색을 나타내지 않은 교토・오사카 출신 캐릭터의 발화는 표준어"로 번역되는 경향이 있고, " 부모나 친구와 같은 주인공의 서브 캐릭터, 작품에서 유일하게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 지역 특성을 강조한 작품 속에 등장한 마이코, 상인 캐릭터, 익살스러운 캐릭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캐릭터 등의 지역 언어 발화는 도착언어권의 지역 언어"로 번역[각주:4]되고 있는데, 한국어 번역 시 도착언어권의 지역 언어로서 많이 고려되는 것은 주로 경상도 방언 또는 전라도 방언[각주:5]입니다. 

 

그리고 이 교코토바는 칸사이벤처럼 특유의 악센트가 있습니다. 높게 시작하는지, 낮게 시작하는지가 그리고 몇 박 째에서 내림 핵이 있는지를 구별하는 악센트인 경판식(京阪式) 악센트가 그것[각주:6]인데, - 이건 칸사이벤을 포함한 모든 방언이 마찬가지지만 - 문자로는 단순히 그 악센트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마터면 잃어버렸을 미묘한 어감" [각주:7]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정리해서 말하자면, 교코토바를 번역할 때는 1. 교코토바가 지닌 정체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며 2. 교코토바를 사용하는 화자의 특징을 고려해야 할 것이며 3. 교코토바의 악센트를 살릴 수 있는 번역이어야 한다.라는 3가지 요건이 성립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도 어렵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으로는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 또한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살펴봤는데, 제가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는 3가지 게임을 중심으로 이를 대조해 봤습니다.

 

출처: https://web.hungryapp.co.kr/news/news_view.php?durl=YmNvZGU9bmV3cyZwaWQ9NzYxMjUmdXNlcj0%3D

 

우선 Fate/Grand Order의 슈텐도지를 살펴보면, 슈텐도지 소개문 원문은 "千紫万紅・神便鬼毒 そないに怖がらんでも、骨 抜かへんで?"으로 'へんで'를 쓰고 있기 때문에 슈텐도지가 교코토바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Fate/Grand Order는 이 교코토바를 경상도 방언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hassan-p.tistory.com/16

 

다음으로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코바야카와 사에의 한 컷 만화를 살펴보면, 사에가 말하는 말의 원문은 "「こんちきちん」いう言葉は祇園祭のお囃子のことなんどす"인데, 여기서도 'なんどす'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 이 말이 교코토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만화를 번역하신 역자 분께서는 당시 한섭의 번역에 맞춰서 표준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출처: 역자 스크린샷.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

 

마지막이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의 마호입니다. 마호의 대사 원문은 "マホマホ王国のパレード開始や~王子はんも、マホマホ王国の王子として、みんなと一緒に楽しんでな♪"으로, 여기서도 'や', 'はん' 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어 이 말이 교코토바임을 알 수 있는데, 한섭의 경우 약간 사극풍 표준어로 번역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된 바처럼 지역색을 나타내지 않은 교토・오사카 출신 캐릭터인 마호나 그 지역 출신인 작품 속의 캐릭터인 사에는 표준어로, - 제가 아발론 르 페이 이후 페그오를 하차해서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 작품에서 유일하게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인 슈텐도지는 지역어로 번역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글에서 제가 논하고자 하는 건 어느 번역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므로 번역의 적절함을 평가하는 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제가 번역을 하면서 느끼기에는 양자를 절충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악센트 때문이었습니다.

 

경상도 방언만으로 번역하면 악센트가 살긴 하지만, 경상도 방언으로 번역하면 교코토바가 지닌 고풍스러움이 살지 않고, 사극풍 표준어로 번역을 하면 교코토바가 지닌 고풍스러움은 살아나지만, 악센트가 미묘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번역할 때 적절한 게 무엇인가 하고 고민해 봤더니 양자 절충이라는 결론이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 블로그에 올라온 괴문서 중 라라가 등장한 괴문서는 2025년 3월 27일 기준으로 2편입니다. 바로 こまろ 작가님의 【신부!】와 せきはん 작가님의 【왕의 흉내】지요. 처음에 こまろ 작가님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저도 라라의 성격을 아예 몰라서, 그리고 작중에서 대부분의 말투가 표준 일본어로 쓰였다고 이해를 했기에 교코토바를 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せきはん 작가님의 작품부터 교코토바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코토바와 표준 일본어가 반반 섞였는데, 문제는 오르페가 라라를 흉내 낸 첫 문장인 '「う~ん...ウチもオルフェさんみたいに強そうな雰囲気だせへんかな...」 (激似)'를 경상도 방언에 맞춰 번역하니 '雰囲気だせへんかな'가 주는 느낌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첫 문장은 사극풍 표준어로, 그다음 문장에서는 교코토바를 경상도 방언으로 번역하는 식으로 약간 변화를 주었고, 마지막 문장은 완전 표준어로 이해했다 보니 표준어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뺑뺑돌려서 말했는데, 교코토바가 나온다면 가급적 기본적으로 사극풍 표준어로 번역하되, 일부 조사나 어미 등은 경상도 방언으로 번역하면 둘 다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라라가 만일 칸사이벤을 말한다면 그건 기존처럼 가급적 동남방언으로 번역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조금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물론 이 글을 보시고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제 생각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제가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번역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쓴 글이며, 동시에 혹여나 교코토바를 번역하시게 될 분이 계시다면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쓴 글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실제로 럭키 라일락은 2017년, 2세 신마, 아르테미스 스테이크스, 한신 쥬브나일 필리즈를 모두 1착으로 석권하였으며, 2019년과 2020년에 개최된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는 모두 1착을 거머쥐는 등 그 성적이 우수하였다. (ラッキーライラック, "netkeiba", 2025년 03월 27일 접속.) [본문으로]
  2. "「ウマ娘」、新ウマ娘「ラッキーライラック」「アーモンドアイ」発表", Game Watch, 2025년 02월 22일 작성, 2025년 03월 27일 접속. [본문으로]
  3. "結局ウマのラッキーライラックが関西弁(京都訛り)な理由の想像" , JENJON(@TM_JEJE), X, 2025년 02월 23일 작성, 2025년 03월 27일 접속. [본문으로]
  4. 양정순, 「 작품 속 캐릭터의 지역 언어 행위에 대한 번역양상 ― 京都·大阪 화자를 중심으로 ―」, 『일본어교육연구』, 제64권, 2023, pp.123-139, p.137. [본문으로]
  5. 김선주, 「일한 번역 소설에 나타난 방언번역에 대한 고찰 -지역방언과 사회방언을 중심으로 -」, 『일본언어문화』, 제32권, 2015, pp.139-161, p.144. [본문으로]
  6. 우에다 아스카, 『일본어 동경 방언 화자와 관서 방언 화자의 한국어 단어 운율 연구』, 석사, 부산, 부경대학교 대학원, 2014, p.24. [본문으로]
  7.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파주, 유유, 초판, 제7쇄, 2016, p.98. [본문으로]